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미셸 드 몽테뉴 (문단 편집) === 『에세』 === 몽테뉴는 자신의 삶을 철학적 사유의 대상으로 삼은 최초의 철학자라 할 수 있다. 그는 일상생활에서 실제로 얻은 사소한 경험에도 모든 주의를 기울였다. 몽테뉴 이전에도 자신의 인생에 대해 쓴 사람들은 있었지만, 스스로의 삶에서 도덕적인 교훈을 얻을 수 있고 그 속에서 누구나 계속 살아갈 만한 이유를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 사람은 몽테뉴 이전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는 모든 인간에게 저마다 세계를 바라보는 독특한 방법이 있다는 것, 사람은 각자 자기 자신을 주된 본보기로 삼는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는 자신이 그 대표적인 사례라고 생각했다.[* 『내가 고양이를 데리고 노는 것일까, 고양이가 나를 데리고 노는 것일까?』 책읽는 수요일. 2012. 김유신 옮김.] 자신에 대한 지식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까닭은 우리에게서 가장 가까운 것이 바로 우리 자신의 몸과 영혼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철학의 진정한 과제는 견고한 개념을 쌓거나 형이상학적 세계로 진입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이미 서 있는 자리를 우리 자신에게 솔직히 보여주는 일일테다. 그러나 그것은 확신을 가지고 우리가 나아가야 할 흔들리지 않는 방향을 찾기 위해서는 아니다. 그것은 상황에 따라 흔들리는 것이 우리의 삶임을 인정하고, 삶은 그 속에서 매번 "자신이 무엇을 아는가"를 찾아가는 과정 중에 있다는 것을 깨닫기 위해서이다. 그렇기에 몽테뉴는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시험'에 빠뜨리고자 했다. 이러한 '시도'를 통해서야 비로소 그는 자기 자신에게 가장 가까이 접근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보통 '에세'는 '시험', '실험', 또는 '시도' 등 지적 활동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해석한다. 그러나 몽테뉴 시대의 '에세essais'라는 말은 단순히 '맛보다' 또는 '시음하다'라는 일상적인 뜻으로도 자주 사용되었다. 즉, 그의 책은 '미셸 드 몽테뉴의 맛보기'라고 해석할 수 있다. 동시에 그것은 '미셸 드 몽테뉴를 맛보기'로도 볼 수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그의 책을 읽는 독자가 직접 그의 작품을 맛보거나 시음해본다는 뜻으로 해석이 가능하다.[* 『내가 고양이를 데리고 노는 것일까, 고양이가 나를 데리고 노는 것일까?』 책읽는 수요일. 2012. 김유신 옮김. p.281] 따라서 그것은 수많은 시도를 통해, 각각의 시도에서 뿜어져 나오는 '인생의 맛'들을 음미하는 것과 같다. 즉, 시도 자체를 즐기는 것이 바로 우리의 삶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다시 스스로에게 스스로를 더 자세히 알려주는 일이 된다. 그래서 몽테뉴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의 삶을 올바르게 즐기는 법을 아는 것, 그것이 절대적으로 완벽하고 실질적으로 신성한 삶의 경지이다. 자기 자신의 용도를 모르기 때문에 다른 환경을 찾아 헤메고, 자신의 내면이 어떻게 생겼는지 모르기 때문에 자아 밖에서 떠도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우리 자신을 알아가는 일은 우리만의 탁월한 미각을 찾아가는 일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히 지식을 채우거나 정확한 답을 맞춤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 미각은, 자신만의 '취향'을 찾아가는 도정을 말하는 것이기에, 항상 스스로에게 솔직해야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열린 마음으로 자기 자신을 끊임없이 시험할 것을 요구한다. 물론 그것은 남이 해줄 수 있는 일이 아니며, 스스로가 몸소 체험해봄으로써 매번 자신의 취향을 직접 확인해볼 수밖에 없는 일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